바로크 시대 주류 음악
14C~16C까지 음악적 주류는 이탈리아와 춤곡을 바탕으로 하는 프랑스였다. 바로크 시대에는 악보에 지시어를 최소한으로 표시하였는데 이는 연주자에게 빠르기와 셈·여림 등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적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즉흥성으로 인해 현대에서도 음악적으로 통할 수 있다. 반면 고전파 이후부터는 작곡가가 악보에 세밀하게 지시를 하게 된다.
비발디 생애
비발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성직자,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가이다. ‘붉은 머리의 사제(司祭, il Prete Rosso)’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음악가로서 대중화를 시도한 인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4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된 <사계(The Four Seasons)>의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다. 붉은 머리라서 평생 붉은 머리의 신부라는 조롱과 멸시를 당하기도 했다. 또한 체력이 좋지 않았던 그는 미사보다는 작곡이나 성가대 업무를 주로 보았다.
비발디는 자작한 오페라를 상연하기 위하여 이탈리아 각지를 순회하기도 하고 빈이나 암스테르담으로 가기도 하였다. 1741년에 빈으로 간 비발디는 빈 궁 속에 객사(客死)하여 그 곳 빈민묘지에 안치되었다. 이 때의 빈 방문 목적은 명확하지는 않으나 황제 카를 6세의 후원을 받으러 간 것으로 추측된다. 비발디의 이름은 그 후 잊혀져 있었으나 대 바흐가 편곡한 작품이 계기가 되어 그 전모가 밝혀졌다.
당시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신부가 되어 성당의 음악 관련 설비를 이용하거나 여유가 있을 경우 프리랜서가 되어 활동하는 방법이 있었다. 비발디는 음악을 잘 하기 위해 신부가 되었던 것이다.

바흐 생애
아이제나흐 궁정과 지방 의회에 고용된 현악기 연주자 요한 암브로지우스 바흐와 엘리자베트 래머히르트 사이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동시대인들 사이에서 뛰어난 하프시코드 연주자, 오르간 연주자, 오르간 제작자로 존경받았지만 오늘날에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Brandenburg Concertos>, <B단조 미사 Mass in B Minor>,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Das Wohltemperierte Klavier> 등 수많은 종교음악과 기악곡을 남긴 가장 위대한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추앙 받고 있다.
독일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음악사의 전성기를 살았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이전 시대의 작곡가들이 발전시킨 주요 양식과 형식, 민족적 전통들을 종합해 풍부하게 만들 수 있었다. 바흐는 유명한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아들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도 음악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바흐의 음악은 수학적 질서 속에 펼쳐지는 무한의 세계와 같다. 마치 잘 짜여진 레고 블럭을 맞추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복적인 음과 단순한 음으로 만들어 내는 선율이 멋지다.
옆으로 펼쳐 놓은 듯한 음악인 푸가 형식과 위치 별 대비 같은 모자이크 식의 대위법을 사용하였다. 바흐의 음악은 복잡한 우리 마음을 다시금 차분히 가다듬어 주는 사색의 음악이다.
바흐가 죽고 50여 년 동안 그의 음악은 빛을 보지 못했다. 하이든과 모짜르트 시대에 이미 생전에도 진부한 작곡가로 생각되던 바흐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특히 전체 작품의 절반 가량이 교회 칸타타인 그의 작품으로는 이미 종교적 사상이 변화를 겪은 상황에서 더 이상 주목을 끌 수 없었다. 그러나 현대의 저술가가 말하는 것처럼 18세기 후기의 음악가들은 바흐의 음악을 몰랐던 것도, 그 영향에 대해 둔감하지도 않았다. 바흐의 영향은 하이든·모짜르트·베토벤에게 직접적으로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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